[말빛 발견] ‘오르다’와 ‘올리다’/이경우 어문부장

[말빛 발견] ‘오르다’와 ‘올리다’/이경우 어문부장

이경우 기자
입력 2019-06-26 17:26
수정 2019-06-2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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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값이 올랐다.” 물건값을 올린 주체가 없는 문장이다. 굳이 주체를 밝힐 필요가 없는 구조로 돼 있다. “물건값을 올렸다.” 누가 물건값을 올렸는지 밝혀야 하는 문장이다. 이런 형태보다 ‘올랐다’는 식의 표현이 더 많이 보인다. 여기에 더 익숙해져 간다.

물건을 파는 쪽에서는 가격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감춘 마음을 겉으로 드러낼 일은 없다. 그러기엔 장삿속만 드러내는 것 같아 부담이 크다. ‘올려’ 놓고 ‘올랐다’고 한다. 파는 쪽의 언어는 대개 이렇다.

‘올랐다’고 해야 ‘올린’ 책임에서 조금 자유로워진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의미가 바닥에 깔린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리됐다는 항변이기도 하다. 물건을 사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올렸다’는 사라지고, ‘올랐다’만 돌아다니길 바라는 건 당연하다. 물건만 파는 게 아니다. ‘올랐다’도 같이 판다. ‘올랐다’는 다분히 상업적인 언어가 된다.

물건만 가져와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 말이 붙어 있는 줄 모른다. 자신도 몰래 파는 쪽의 이익을 대변한다. 물론 ‘올린’ 게 아니라 정말 ‘오른’ 것일 때도 있다. 값이 오른 건지, 값을 올린 건지 구별해야 한다.

wlee@seoul.co.kr

2019-06-2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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