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타임 피스/레베카 애크로이드 · 하얀 감꽃은 누이를 닮았다/정훈교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타임 피스/레베카 애크로이드 · 하얀 감꽃은 누이를 닮았다/정훈교

입력 2022-04-28 20:22
수정 2022-04-29 02: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이미지 확대
독일 페레스프로젝트 갤러리가 아시아 최초로 서울 중구에 분점을 열고 개관전 ‘스프링’을 개최한다. 5월 11일까지.

하얀 감꽃은 누이를 닮았다/정훈교

돼지 머릴 삶는 가마솥 위로 어둑어둑 당신이 온다

목소리는 낡은 옛집이 물에 잠기듯 어둑어둑하고

푹 고은 살과 뼈는 무릎처럼 허물어져 어둑어둑 잠기고

팔팔 끓는 이마를 짚어보다가도 이내 또 어둑어둑해지는

쇠죽을 쑤는 무쇠솥과 붉은 아궁이를 안으며 어둑어둑 당신이 온다

감나무에서 슬레이트 지붕을 타고 별 하나 지상으로 떨어진다

밤새 푹푹 잠기던 길은 마을 하나를 재우고서야 아득해지는

이 별에서 이별을 생각하는 당신이 더욱 아득해지는

아침 아궁이에 밀어 넣은 감자 하나가 어둑어둑 굴러 나온다

오늘따라 아랫목도 덩달아 어둑어둑해지는

(외할머니가 마지막으로 군불을 더 넣으신다)

어릴 적 내 살던 마을에서는 감꽃을 감또개라고 불렀지요. 감또개가 피는 철엔 감나무 아래 모여 하루 내내 놀았습니다. 감또개는 촉촉하고 단맛이 있지요. 꽃잎 살이 통통해 식감이 좋았습니다. 한 줌 두 줌 따먹다 보면 횟배가 가라앉았지요. 감또개를 엮어 꽃목걸이를 만들기도 하고 꽃반지를 만들기도 했지요. 누군가에게 꽃반지를 끼워 주기도 했는데 그때부터 내 시가 세상에 태어났는지 모릅니다. 감꽃이 피는 계절이 다가옵니다. 묵은 감나무에 올라 감꽃 속에 앉아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찾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아궁이에 밀어 넣은 감자 한 알이 ‘어둑어둑’ 굴러나오는 시간입니다.
2022-04-29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새벽배송 금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새벽배송 금지’ 제안을 두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노동자의 수면·건강권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새벽 배송을 원하는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 민생경제를 지켜야 한다는 반발이 정면으로 맞붙고 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1. 새벽배송을 제한해야 한다.
2. 새벽배송을 유지해야 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