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단계별·동시적 조치”, 폼페이오 “잘게 쪼개지 않겠다”

김정은 “단계별·동시적 조치”, 폼페이오 “잘게 쪼개지 않겠다”

김태이 기자
입력 2018-05-09 13:25
수정 2018-05-0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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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비핵화 로드맵’ 샅바싸움…폼페이오-김정은 2차 회동서 접점마련 주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이 몇 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최대 의제인 ‘비핵화 로드맵’을 둘러싸고 양국의 샅바싸움이 벌써부터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8일(현지시간) 40일만의 재방북 목적으로 북미정상회담 의제 확정 등을 꼽으며 “북한이 옳은 일을 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부활절 주말(3월 31일∼4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비밀리에 방북, 김정은(오른쪽)과 면담하며 악수하는 당시 국무장관 내정자 폼페이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8일(현지시간) 40일만의 재방북 목적으로 북미정상회담 의제 확정 등을 꼽으며 “북한이 옳은 일을 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부활절 주말(3월 31일∼4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비밀리에 방북, 김정은(오른쪽)과 면담하며 악수하는 당시 국무장관 내정자 폼페이오
단계별로 비핵화 수순을 밟으면서 제재해제, 평화협정 체결, 국교정상화 등 보상과 반대급부를 얻어내려는 북한 측과 제재완화 또는 보상 없이 곧바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절차를 강조하는 미국 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북미가 정상회담 장소와 일정을 확정하고도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은 비핵화 쟁점을 둘러싼 양측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세기의 담판’에 앞서 의제 등에 대한 막판 사전 조율의 임무를 띠고 두 번째 깜짝 평양행에 나선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평양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 측이 ‘단계별·동시적 조치’를 요구하고 있는데 대해 “우리는 잘게 세분화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는 김정은이 원하는 결과도,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결과로도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우리는 과거 걸었던 길을 답습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분명히 하길 원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른바 ‘살라미 협상전술’로 불리는 단계별·동시적 조치를 일축하면서 ‘리비아’식 모델처럼 일괄타결식 해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에 거듭 쐐기를 박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국무부 고위 관계자도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매우 유념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새롭고 과감한 접근을 필요로 한다. 그보다 덜한 어떤 것도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 수십 년 동안의 점증하고, 점진적이며, 장기적이면서, 궁극적인 군축과 대조적으로 ‘과감한 조치’라는 말을 한 것”이라면서 “이런 공식은 평화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슈퍼 매파’로 불리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브리핑에서 “오늘 탈퇴는 이란뿐 아니라 다가오는 북한 김정은(국무위원장)과의 회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불충분한 합의는 수용할 수 없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언급, 대놓고 북한을 겨냥했다.

볼턴 보좌관은 구체적으로 북한이 1992년 남북한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돌아할 것을 촉구하고 플루토늄 재처리 포기와 함께 우라늄 농축 문제를 지목했다.

이 같은 언급은 최근 북한을 겨냥한 일련의 압박 흐름과 맞물려있다. 백악관은 지난 5일 볼턴 보좌관과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보국장의 4일(현지시간) 회동 결과를 소개한 보도자료에서 “모든 핵무기, 탄도 미사일, 생·화학무기와 관련 프로그램을 포함하는 북한 WMD의 완전하고 영구적인 폐기라는 공유된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대량살상무기(WMD)의 폐기를 강조했다.

단순히 핵무기를 넘어 생·화학무기까지 폐기의 범위를 크게 확장시켜놓은 것이다. 국무부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김정은 위원장이 화학무기를 이용해 타국에서 이복형제를 살해하는 것이 약 1년전”이라며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매우 냉정하게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맞서 김 위원장은 지난 7일부터 8일까지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을 방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북미대화를 통해 상호신뢰를 구축하고 유관 각국이 단계별, 동시적으로 책임 있게 조처하며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전면적으로 추진해 한반도 비핵화와 영구적인 평화를 실현하길 바란다”고 밝혔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전했다.

김 위원장이 3월 방중 때 처음으로 밝힌 대로 일괄타결을 바라는 미국의 ‘빅뱅’ 접근법과 달리 단계적 핵 포기 수순을 밟아나가겠면서 제재완화 등의 보상을 받아내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이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 시 주석과 40여일 만에 재회한 것 자체가 북미정상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전통의 우방인 중국이 단계별·동시적 조치를 지지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미국의 압박에 맞서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앞서 북한 외무성은 6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의 문답에서 “미국이 우리의 평화 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을 향해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양측의 입장이 이처럼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통 큰’ 협상스타일로 볼 때 극적인 접점을 마련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특히 북한은 이르면 이날 중으로 북한 억류자 3명을 석방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미정상회담과 직접 연계된 것은 아니지만 회담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바꾸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2일 취임식에서 CVID보다 한단계 더 강경한 접근으로 보이는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폐기’(permanent,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를 강조했다가 이번 방북길에서 다시 CVID를 표현한 것도 양측이 공통분모를 마련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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