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탐험하다
자기의 삶에 대한 사랑을 - 큰 사랑을 가질 필요가 있다.왜냐하면 우리를 짓누르는, 이유 없는 절망들에 대하여
그것이 하나의 알리바이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 알베르 카뮈
희망이라는 말을 입 안에서 굴려 보세요, 어때요? 희망이라는 말, 참 좋지요.
정동진, 희망이라는 간이역에 신묘년의 해가 떴습니다. 밝은음자리표가 하나 붉게 떠올랐습니다. 올해는 희망에 등을 기대도 좋을까요? 가슴속에 희망을 품고 미래를 탐험해도 좋을까요? 지금의 냉전을 걷어내고 해안선과 나란히 달리는 저 철길을 따라 시베리아까지 갈 수 있기를 갈망해 봅니다. 단지 희망을 품었을 뿐인데도 벌써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일출을 뒤로 한 채 오죽헌을 향하다 강릉 초당 순두부에 빈속을 채웠습니다. 두부향이 매우 진하면서도 비리지 않은 것이 초당 두부가 가진 매력입니다. 허겁지겁 한 그릇을 우겨 넣었습니다. 오죽헌의 까만 대나무들은 여전히 푸른 이파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에 그려진 포도가 한겨울에도 싱싱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곳 오죽헌에서 위대한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율곡 이이 선생이 탄생했습니다. 신사임당, 그녀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입니다. 오죽헌 담장 밖엔 강릉사립박물관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당간지주 앞에서 자연스레 주눅이 드는 건 무슨 까닭일까요.
오대산 전나무 숲에서 삼림욕을 즐기며 월정사에 올랐습니다. 동안거에 든 스님들의 머리 위에도 새해의 태양이 떴습니다. 월정사 8각9층석탑(국보 제48호)의 아름다움에 취해 탑돌이를 합니다. 염원은 소리가 나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속에 말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꼭꼭 옷깃을 여밉니다. 희망은 나눠 갖는 것이지요. 그래서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찾아 상원사로 길을 재촉합니다. 상원사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국보 제36호)이 있습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 가는 길은 약 7킬로미터의 비포장 황톳길입니다. 운전 재미도 제법 쏠쏠합니다. 길에 쌓인 눈과 얼음에 발은 자꾸 미끄러집니다. 얼어붙은 황톳길에도, 산사 지붕 위에도, 풍경 속에도 햇발이 가득합니다.
희망을 탐험하기엔 더 없이 좋은 무박 2일이었습니다. 희망을 보았냐구요? 희망은 내 귓속에, 마음속에 그리고 내 발자국 속에도 있습니다. 길 위에 널린 게 다 희망이었습니다. 송어의 지느러미 위에도, 얼음장 밑에도, 고드름 끝에도 희망은 있었습니다.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것이 희망이었습니다. 희망, 그것은 내 마음속에 쟁여두고 평생 아껴 먹어야 할 양식이었습니다.
글·사진_ 고영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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