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9>3·1운동 푯돌을 찾아서
2·8독립선언과 3·1독립운동의 산실 역할을 한 서울 YMCA회관. 1907년 정초식 때 당시 열한 살이었던 영친왕이 쓴 ‘一千九百七年’이라는 머릿돌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잡지 ‘개벽’을 발간한 천도교 개벽사 바닥 터에 민족대표 33인과 한국과 중국 위안부 피해자 등 3000여명의 이름이 새겨진 이름돌이 세워졌다.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에 시작돼 5월 2일까지 산발적으로 이어졌다. 학계에서는 운동의 전개과정을 3월 1일부터 14일까지는 시발기, 15일부터 28일까지는 전환기로 본다. 절정기는 3월 29일부터 4월 11일까지, 5월 초 이후를 퇴조기로 보았다. 경성 만세시위의 양상도 비슷했다.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의 보고서와 매일신보 보도에 따르면 3월 1일 저녁 대한문 앞에 집결한 3000여명의 학생과 시민이 만세를 불렀고 이어 8시쯤 연희전문학교 부근에서 학생 200명, 11시쯤 마포 전차종점에서 1000여명의 시민이 만세를 외쳤다. 고종의 국장일(3월 3일)을 제외한 2일, 5일, 8일, 22일, 23일, 25일 사대문 안과 밖에서 수백명 단위의 산발적 시위가 줄을 이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학생과 시민이 모여 독립선언을 한 삼일운동의 발화지 탑골공원 팔각정. 100년 뒤인 지난 22일 미래유산 투어단이 같은 장소에서 독립선언서 낭독을 하고 있다.
‘손기정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폐간된 옛 조선중앙일보 사옥.
시위대가 특정 장소에 반복적으로 나타난 까닭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 현재의 사직터널과 율곡로가 없던 시절 양쪽이 막혀 있는 광화문보다 경운궁 대한문 앞은 광화문과 종로, 을지로, 서대문, 서소문을 잇는 사통팔달 간선도로의 출발점이라는 이동상의 이점이 컸다. 두 번째로 동선이 자주 겹친 정동은 민족자결주의가 제창된 서구제국의 공관이 몰려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시위의 목적과 지향성을 알려주는 단서다. 세 번째는 사대문 안과 주변을 반복적으로 행진하면서 시위 목적을 알리고 참여를 유도했다는 측면에서 근대적 도시 시위의 특징이 뚜렷하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쥔 고종이 경복궁이나 창덕궁으로 환궁하지 않고 경운궁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한 게 경성의 도시공간 개편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경복궁과 경운궁을 연결하는 태평로가 닦였고 경운궁과 원구단을 연결하는 소공로, 정동 공관과의 연결로인 정동길, 도성 서쪽 용산과 마포로 나가는 서소문로 등이 각각 정비됐다. 경운궁을 중심으로 형성된 방사상 도로망이 3·1운동 만세시위의 중요 루트가 됐다. 경운궁은 도심부 교통의 기점이자 종점이 됐다. 대한문 앞 시청 앞 광장은 현대 서울 도심부의 열린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1912년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경성시가지 도로정비사업, 즉 경성시구개수를 통해 형성된 도로망을 따라 시위대가 옮겨 다닌 셈이다.
천도교 산하 보성사 사장 이종일 선생의 동상. 이 선생은 극비리에 독립선언서를 인쇄했으나 일경에게 발각되자 족보라고 속여 배포했다. 보성사는 조계사 경내에 있었지만 현재 기념비와 동상은 조계사 후문 맞은편 근린공원 안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도시 시위문화의 원조는 1898년 3월 종로 백목전 앞에서 열린 제1차 만민공동회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고 대중연설이 실시된 게 특징이다. 또 이를 주도한 독립협회는 궁궐 앞에 모여 만세를 하는 시위문화의 정형을 만들었다. 일제 강점 이후 경성시내에서 이뤄진 각종 행사는 국기(일장기)를 들고 만세(천황)봉창과 행진의 순으로 이뤄졌는데 삼일운동도 이를 답습했다. 특별한 행사 없이 독립선언서 낭독과 대한(조선)독립 만세 삼창 그리고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단순한 시위양태였다. 시위의 단순함이 3·1운동을 들불처럼 번지게 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제10회 서울의 영화 2(이용민 감독의 ‘서울의 휴일’)
■일시 및 집결장소:6월 29일(토) 오전 10시 서대문역 5번 출구 앞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2019-06-27 1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