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크로스컨트리 이채원 “‘아줌마 파워’ 기대하세요”

女크로스컨트리 이채원 “‘아줌마 파워’ 기대하세요”

입력 2011-01-18 00:00
수정 2011-01-18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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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인 스포츠] “서방님 외조에 기량 쑥쑥”

커피숍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깨소금 냄새’가 진동했다. 생글거리는 이 여자, 말끝마다 ‘서방님’이 입에 붙었다. 지난해 3월 결혼식을 올린 새색시. 필리핀 보라카이로 일주일 허니문을 다녀온 뒤 바로 합숙훈련을 시작했다. 이렇다 할 신혼도 없었다. 주말부부라 더 애틋하다. ‘품절녀’가 됐지만 기록은 오히려 줄었다. 이게 ‘아줌마 파워’일까. 인생의 절반 이상인 16년째 국가대표로 사는 크로스컨트리의 ‘살아 있는 전설’ 이채원(30·하이원)이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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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지난해 3월 결혼한 새색시 이채원이 “올 시즌엔 달라진 ‘아줌마 파워’를 보여 주겠다.”며 활짝 웃고 있다. ② 지난해 2월 밴쿠버동계올림픽에 출전해 역주 중인 이채원. ③ 남편 장행주씨와 찍은 웨딩사진.
① 지난해 3월 결혼한 새색시 이채원이 “올 시즌엔 달라진 ‘아줌마 파워’를 보여 주겠다.”며 활짝 웃고 있다. ② 지난해 2월 밴쿠버동계올림픽에 출전해 역주 중인 이채원. ③ 남편 장행주씨와 찍은 웨딩사진.


●결혼 1년차… ‘차도녀’서 ‘푼수데기’로

서방님 장행주(30)씨를 처음 만난 건 2008년 3월이었다. 동료 정의명(평창군청)의 소개였다. “동갑보다 오빠가 좋았기에” 처음엔 별로 안 끌렸다. 그런데 서글서글한 친구가 자꾸 ‘작업’을 걸더란다. 유머감각이 있으면서도 어른스럽고 듬직했다. 못 이기는 척 연애에 돌입, 2년 만에 결실을 보았다.

종합격투기를 했던 서방님은 운동선수 생활에 빠삭하다.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마눌님’을 포근히 안아 주기도 하고, 어떨 땐 “더 혹독하게 하라.”며 채찍질도 한다. 보양식도 기본이다. 비타민·오메가3는 물론 장어·흑염소 등 몸에 좋다는 건 다 갖다 바친다. 처가에 과일 사 나르며 살갑게 구는 건 기본.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감독·코치에게 케이크와 샴페인을 깜짝 선물했다. ‘외조의 황제’가 따로 없다. 주변에서 “시집 잘 갔다.”고 난리다. 이채원은 “맘에 안 드는 구석이 전혀 없어요. 싸울 일도 없고, 100% 만족해요.”라며 살살거린다.

애교도 늘었다. 이채원은 ‘차도녀’(차가운 도시여자)였다. 먼저 말 붙이는 법도 없고,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내성적인 선수. 스트레스를 받아도 속에만 담아 뒀다. 예민해서 밤에 잠도 잘 못 잤다. 하지만 털털하고 사교성 많은 서방님을 만나 확 달라졌다. 이제는 불안한 게 없다. 느긋함과 여유가 생겼다.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붙이는 ‘푼수데기’가 됐다.

●“아기 낳고 소치까지 가고싶어”

사실 크로스컨트리는 외로운 종목이다. 오르막, 내리막이 섞인 설원을 최고 30㎞까지 달린다. ‘눈 위의 마라톤.’ 대화고 1학년 때 태극 마크를 단 이채원은 평생 크로스컨트리 외길을 걸었다. 신혼여행 일주일이 인생의 가장 긴 휴식일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렸다.

이채원은 “난 정말 할 만큼 했다.”고 했다. 맞다. 동계올림픽을 세 번 나갔다. 전국 동계체전 금메달도 45개로 한국에서 제일 많이 땄다. 국내 대회는 지금도 나갔다 하면 1등이다. 후배들이 감히 눈도 못 마주치는 전설. 더 이룰 게 없다.

그런데 욕심이 생기나 보다. 이채원은 “아기 낳으면 심폐력에 더 좋대요. 외국에는 아줌마 선수들이 많아요. 저도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까지는 해볼까 싶어요.”라며 웃는다. 머쓱한지 변명을 늘어놓는다. “힘들어서 그만할까도 생각했는데, 결혼하고 자꾸 몸이 좋아지니까요.”

이채원은 당장 이달 말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에 나선다. 입상 가능성은 낮다. 워낙 세계와의 격차가 크다. 특히 홈 카자흐스탄의 기량이 좋다고. 덩치 큰 선수들이 폴체킹 한번에 쭉쭉 앞으로 나갈 때, 154㎝의 이채원은 두번씩 눈밭을 지쳐야 한다. 국제스키연맹(FIS) 랭킹은 260위지만 씩씩하다. “세계 벽이 높다는 걸 알아서 긴장은 안 해요. 제가 가진 걸 다 보여 주겠다는 생각,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뿐입니다.”

이채원은 10년 넘게 자신과의 싸움을 해 왔다. 그러나 든든한 서방님이 함께하는 한 더 이상 고독하지 않을 것 같다. “이번엔 ‘아줌마 파워’ 보여 드릴게요.”란 호언장담이 예사롭지 않다.

글 사진 평창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2011-01-18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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