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용 감독 광화문 라운지 초청 강연
30대 지도자 생활할 땐 권위적 스타일제자들 뒷담화 듣고 정신 번쩍 들었죠
지시만 하면 선수들 못 받아들일 수도
U20 성공 키워드 ‘자율 속의 규율’ 제시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정정용(오른쪽)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감독이 29일 서형욱(왼쪽) MBC 해설위원의 사회로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서울신문 ‘광화문 라운지’에서 자신의 축구 철학과 지도 원칙을 설명하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정정용(50)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감독은 29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서울신문 주최 ‘광화문 라운지’에서 ‘대표팀 공격수 조영욱(20·FC 서울)이 스마트폰을 허락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소문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하며 ‘아빠 미소’를 지었다.
1999~2000년대생이 주축인 개성 강한 23명의 선수를 ‘원팀’으로 만들며 지난 6월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준우승 쾌거를 이룬 정 감독은 성공 키워드로 ‘공동의 목표의식’, ‘자율 속의 규율’, ‘책임은 내가 진다’, ‘모두가 주인공’을 제시했다. 정 감독은 선수들이 같은 꿈을 꾸고, 스스로 규율을 지키되, 모든 책임은 감독이 짊어지는 솔선수범을 강조했다. 여기에 정 감독은 소외되는 선수가 없도록 고른 출전 기회를 부여하며 청춘들의 마음까지 보듬었다.
‘호통보다 소통’을 내세워 젊은 선수들에게 녹아든 정 감독이지만 처음부터 소통의 달인은 아니었다. 그는 이날 30대에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자신도 여느 감독과 마찬가지로 일방적 지시를 쏟아 내는 권위적인 스타일이었다고 고백했다.
정 감독은 “한 중학교 축구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늘 열정적으로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내가 가진 걸 다 가르쳤다고 생각했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어느 날 화장실에 있는데 선수들이 내가 있는 줄 모르고 ‘감독이 가르치는 거 반도 못 알아듣겠다’고 하더라. 화장실에서 30분 동안 나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날 제자들의 화장실 뒷담화가 정 감독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정 감독은 “내가 지시를 한들 선수들 입장에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호통밖에 안 되는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U20 월드컵 출전 전 ‘목표는 우승’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선수들에게 즐기는 축구를 주문하면서 일희일비하지 않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대회 성적에 따라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국대 축구판에서 ‘선수들이 즐거운 축구’가 감독 자리를 담보하는 건 아니었다. 정 감독은 “이번 월드컵에서 선수들의 부담이 커 자기 기량을 온전히 발휘하기 쉽지 않았다”며 “선수들에게 ‘결과는 내가 다 감수할 테니 후회하지 않게 즐기며 최선을 다하자’고 당부했다”고 돌아봤다. 이 과정에서 나온 비장의 무기가 바로 선수들과 공유했던 ‘전술노트’였다.
U20 준우승 이후 해외 리그의 러브콜을 받았던 정 감독은 지난 20일 대한축구협회와 2021년까지 U20 감독직을 유지하기로 재계약했다. 정 감독은 “이때 아니면 새로운 축구 문화를 만들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2019-08-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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