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서 ‘인간 사냥 관광’… 이탈리아, 30년 전 진실 파헤친다

사라예보서 ‘인간 사냥 관광’… 이탈리아, 30년 전 진실 파헤친다

이재연 기자
이재연 기자
입력 2025-11-13 00:24
수정 2025-11-1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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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 관광’ 혐의 자국민 파악 착수

보스니아 내전 때 학살 체험 정황
세르비아계 병사에 1억원 이상 내
어린이>군인>여성 순 가격표도
담당 검사 “최대 100명 연루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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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수도 사라예보에서 한 남성이 저격수가 쏜 탄환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아이를 안은 채 달리고 있다. 오른쪽 남성은 총소리를 듣고 공포에 질려 달아나지도 못한 채 움츠리고 서 있다. 사라예보 AP 연합뉴스
1993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수도 사라예보에서 한 남성이 저격수가 쏜 탄환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아이를 안은 채 달리고 있다. 오른쪽 남성은 총소리를 듣고 공포에 질려 달아나지도 못한 채 움츠리고 서 있다.
사라예보 AP 연합뉴스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 당시 약 10만 유로(약 1억 7000만원)를 주고 민간인을 저격케 한 ‘인간 사냥 주말 관광’ 의혹을 파헤치는 수사가 이탈리아 검찰에서 시작됐다. 수십년간 루머로 떠돌았던 의혹은 2022년 슬로베니아 출신 영화감독 미란 주파니치의 다큐멘터리 ‘사라예보 사파리’를 통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탈리아 밀라노 검찰은 이탈리아를 비롯해 미국, 러시아 등의 시민들이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 시민들을 재미 삼아 저격하는 관광을 했다는 혐의에 대한 수사를 개시했다고 레 푸블리카 등 유럽 언론들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7장에 이르는 고소장에 따르면 ‘주말 저격수’ 관광을 위해 서방인들은 당시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 휘하 병사들에게 8만~10만 유로(1억 3600만~1억 7000만원)를 지불했다. 이들은 주말을 이용해 세르비아 항공편으로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를 경유한 뒤 세르비아계 민병대와 함께 사라예보 주변 언덕으로 이동했다. 여기서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을 미숙한 솜씨로 저격했다.

관광객에는 개인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밀라노 사업가, 토리노·트리에스테 시민들이 포함됐으며 대부분 총기 애호가이거나 극우파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 사냥에는 ‘가격표’도 달렸다. 어린이, 군복 입은 무장 군인, 여성 순으로 돈을 많이 걸었으며 노인은 무료로 죽일 수 있었다고 한다.

고소장은 이탈리아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에지오 가바첸니가 전직 판사 2명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다. 그동안 사건 정보를 수집해 온 베냐미나 카리치 전 사라예보 시장도 고소장 작성을 도왔다. 알레산드로 고비 검사장이 지휘하는 밀라노 검찰은 당시 인간 사냥 관광에 연루된 자국인들의 신원을 파악해 처벌할 방침이다.

담당 검사는 “당시 보스니아 정보국 요원을 포함해 증인들을 조만간 소환할 예정”이라며 “피에 굶주린 전쟁 관광객이 100명에 이를 수도 있다. 이 중 적어도 10명은 찾아내길 바란다”고 밝혔다. 가바첸니는 레 푸블리카 인터뷰에서 “사라예보로 여행한 외국인들은 신을 속이고도 처벌받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와 평범한 삶을 이어 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르비아는 여전히 이런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이어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사라예보를 1425일에 걸쳐 포위했고 이는 현대사에서 가장 긴 포위전으로 기록됐다. 이 기간 세르비아계 저격수들은 1만 1000명이 넘는 민간인을 살해한 것으로 추산된다. 1993년 당시 25세였던 보스니아 무슬림 남성 보슈코 브르키치와 21세 여성 가톨릭 교도인 아드미라 이스미치 커플이 사라예보 시내 한 다리를 건너다가 살해됐지만 접근이 위험해 시신이 방치되면서 전쟁의 무차별성과 잔혹성에 국제적인 공분이 일기도 했다.
2025-11-1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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